『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트로이아 서사시권’은 하나의 통일된 전체를 이루는 8편의 서사시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첫 번째인 [퀴프리아](Kypria)는 이른바 ‘파리스의 심판’부터 그리스군의 트로이아 도착까지를 다루고, 그 두 번째로 [일리아스]이다. 세 번째인 [아이티오피스](Aithiopis)는 아킬레우스가 여인족 아마조네스의 여왕 펜테실레이아(Penthesileia와 아이티오피스](Aithiopis)의 왕 맴놈을 죽이고 나서 자신도 아폴론 또는 파리스가 쏜 화살에 죽는 장면을 노래한다. 네 번째인 [소 일리아스](Ilias mikra)와 다섯 번째인 [일리오스의 함락](Iliou persis)은 아킬레우스의 사후 그의 무구들을 두고 오뒷세우스와 아이아스가 서로 경합한 이른바 ‘무구 재판’과 목마의 계략에 트로이아가 함락되는 과정을 노래한다. 이상 5편이 전쟁을 노래하는 데 반해 여섯 번째인 [귀향](Nostoi)은 오뒷세우스를 제외한 다른 그리스군 장수들의 귀국을 노래하고, 그 일곱 번째가 [오뒷세이아]이다. 여덟 번째인 [텔레고노스 이야기](Telegoneia)는 [오뒷세이아] 이후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지시한 대로 [오뒷세우스가 여행한 일과 그가 아들 텔레고노스에게 살해당하는 이야기를 노래한다. (『일리아스』 해설에서 754) 8편의 서사시 중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두 편만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일리아스』(호메로스, 천병희역, 숲)
오랜 숙제였던 『일리아스』를 이제야 완독했는데, 이제껏 그 해설서만 읽어왔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백문이 불여일독이라고 역시 고전은 직접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판소리처럼 사흘 동안 쉬지 않고 꼬빡 낭송해야 하는 방대한 분량의 일리아스는 10년이나 계속된 트로야 전쟁의 9년째의 며칠 동안의 이야기라고 한다. 그리스 연합군의 전사 아킬레우스는 총사령관 아가멤논과의 불화로 전쟁에 출전을 거부해서 전쟁이 길어지고 불리해지자, 아킬레우스의 둘도 없이 친한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그의 갑옷을 입고 대신 출전하면 트로이아군이 물러날 것이라는 제안을 파트로클로스가 받아들여 부정적인 아킬레우스에게 간청해, 결국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무장과 병력을 파트로클로스에게 빌려주어 그가 대신 전쟁에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 흥분한 파트로클로스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성벽 근처에 갈 생각은 꿈에도 말아라."라는 아킬레우스의 충고를 까먹고 성벽 근처까지 가서 적들을 상대하다가 헥토르에게 전사하고 말았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들은 아킬레우스는 매우 슬퍼하면서 복수를 다짐하고 아가멤논을 직접 찾아가 화해하고, 여신인 어머니 테티스에게 부탁해 헤파이스토스가 직접 만든 최상급 무구들을 갖춰서 트로이아 전쟁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자신의 미르미돈 부대와 함께 파트로클로스 전사 이후 사기가 오른 트로이아군을 다시 성안으로 몰아넣고, 잔뜩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이때 안면이 있던 트로이아 군인들이 애원할 때도 상관하지 않고 전부 도륙했다. 실제로 아킬레우스는 복귀 전까지 파트로클로스 빼고 "내가 아는 사람이 죽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인데?라며 차라리 잘됐다. 그리스든 트로이아든 서로 싸우다가 다 죽어라."와 같은 이기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말이다. 헥토르를 죽인 아킬레우스는 헥토르가 입고 있었던 자신의 원래 갑옷을 벗겨 전차에 실은 뒤 분풀이로 그의 시체를 전차에 매달아 끌고 트로이아 성을 돌며 파트로클로스와 그밖에 헥토르에게 죽은 장병들의 원한을 풀었다. 이때 헥토르의 부모와 가족들, 신하들, 트로이아의 장병들, 백성들이 이 광경을 보고 오열한 건 당연했고, 트로이아를 편든 아폴론이 대로했다.
그 후 헥토르의 아버지이자 트로이아의 왕인 프리아모스가 시종 한 명만 대동한 채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아 삼엄한 경비를 뚫고 아킬레우스를 만나러 왔다. 프리아모스는 많은 몸값을 가지고 아버지로서 아들의 장례를 치러주게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아킬레우스는 친구와 장병들을 죽인 원수의 시체를 안 내주겠다며 분노했다. 당장이라도 경비를 부르고 아들처럼 똑같은 꼴을 내려고 했지만, 프리아모스 왕으로부터 자식을 잃은 부모의 큰 슬픔이 얼마나 큰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도 헥토르를 죽여서 큰 전공을 올렸고, 자기 부모도 자기를 잃고 자식 잃은 슬픔에 평생을 괴로워할 것을 떠올리고 함께 통곡한다. 결국 아킬레우스는 호랑이 같은 눈빛을 거두고, 프리아모스가 자신을 찾아온 것은 제우스가 왕에게 돌려주라는 뜻이라 여겨서 직접 헥토르의 시신을 수레에 실어 주고,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12일 간의 휴전을 보장하며, 음식까지 대접했고 푹 쉬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래서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에서 시작하여 그의 연민으로 끝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오뒷세이아』(호메로스, 이준석역, 아카넷)『오뒷세이아』를 이준석이 새로 번역한 것으로 읽었다. 그리스·로마 고전들을 정년퇴직하고 난 다음 놀라운 속도로 번역한 천병희의 번역의 특징이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매끄러운 의역(가독성)이었다면 이준석은 원전 고유의 표현을 살린 직역(정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신과 같을 정도로 꽤 많은 오뒷세우스가 목마의 계략으로 트로이아를 함락시켜서 그리스 연합군은 10년이나 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일제히 귀향에 오른다. 정작 승리를 이끈 오뒷세우스는 그 당시에도 두 주면 갈 수 있는 거리를 갖가지 고난을 겪으며 10년이나 방랑을 한다. 특히 그를 연모한 영원히 젊은 여신 칼립소가 같이 신처럼 살자는 집요한 유혹에 7년이나 갈등한 끝에 뿌리치고 떠나고 만다. 일리아스에서처럼 그를 싫어하는 신들의 방해와 그를 좋아하는 신들의 도움으로 늙어가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천신만고의 고난을 이겨내고 끝내 귀향을 이루고 만다. 오디세우스가 떠나 있는 20년 동안 괴롭힌 구혼자들 무리의 유혹을 이겨내며 늙어간 아내가 지킨 집으로 돌아가 구혼자 무리를 처단하고 그의 왕국을 회복한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나 오래 행복하게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오디세우스는 모든 인간처럼 늙어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오뒷세이아의 핵심은 20년 만에 만난 부부의 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다려 왔던 행복한 순간에 아내는 그들이 잃어버린 젊음을 이야기하고, 남편은 여전히 남아 있는 노역과 죽음에 대해 담담히 말한다. 이것이 호메로스가 보여 주는 인간의 길이다. 신들은 언제나 젊고, 고생을 알지 못한다.“ 567 생로병사 과정을 겪어야 하는 인간의 길을 선택한 오뒷세우스는 진정한 인간적인 영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이야기는 인간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하게 만든다..
두 작품을 읽는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지만 결국 신들이 정해 놓은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람마다 자신의 성향에 따라서 선택하고 결정을 해 나가다 보면 자연히 그런 방향으로 운명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리라. 신이 정해 놓은 것이든 아니든. 성경, 특히 구약성경을 신앙의 대상으로 읽으면 신이 인간을 직접 지배한다는 것을 당연하다고 느꼈는데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에서도 신들이 완전히 인간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다신론을 반영하듯 신들끼리 자기가 좋아하는 인간을 편들어 불리하다 싶으면 상대에게 안개를 뿌려서 못 보게 하고, 안전한 곳으로 빼돌리는 등 만화 같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이라고 하겠지만, 고대 동양에서는 신의 직접 개입하는 것이 없는데 그 차이가 뭘까 궁금해진다. |